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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는 살아있다. 고대국가 대가야의 삶이 흐르는 역사의 현장


기획전시실

대가야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 공동기획특별전
대가야 토기공방 고령본점과 창원분점
2019.04.09(화) ~ 06.16.(일) 대가야박물관 기획전시실

대가야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 공동기획특별전
대가야 토기공방 고령본점과 창원분점01

대가야 토기는 고령을 중심으로 영남과 호남동부지역 등 넓은 범위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가야가 삼국에 버금가는 고대국가로 발전했음을 알려 주는 물질적인 증거입니다. 특히, 대가야 토기는 예술성과 실용성을 갖춘 한국 고대 토기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대가야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 공동기획특별전
대가야 토기공방 고령본점과 창원분점02

이번 전시는 ‘대가야 토기공방, 고령 본점과 창원 분점’이라는 다소 이색적인 주제로, 대가야박물관과 국립김해박물관이 힘을 모아 대가야의 중심지인 고령 ‘송림리가마터’와 지산동고분군, 경상남도 창원의 ‘중동가마터’와 중동유적의 토기를 소개하였습니다. 대가야 토기가 어디에서 생산되어 어떻게 유통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가야 사람들의 삶의 단면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대가야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 공동기획특별전
대가야 토기공방 고령본점과 창원분점03

대가야 토기가마가 창원으로 간 까닭은?

대가야 토기가 널리 유통된 것은 기본적으로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가야는 국력이 강성해지면서 영역을 넓히고, 정치적인 관계에 따라 상징성이 높은 토기를 나누어주는 분배 정책을 추진하였다. 또한, 당시 사회의 내세관에 따라 의례용품인 껴묻거리로 많은 토기를 고분에 넣었다. 대가야 토기의 유통은 경제권과 정치·영역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가야 토기의 유통 범위와 분포 양상은 대가야의 발전에 따른 영역 확대에 발맞추어 변화하였다. 5세기 중엽부터 고령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진출하여 합천, 함양, 남원 등 가야의 서북부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그 후 6세기에 접어들면서 가야의 남부권에 새로운 생산과 유통 거점을 마련하여 함안, 창원, 마산, 고성 등으로 유통 범위를 확대하였다. 대가야 토기는 유통 범위의 확대에 따라 분포 유형도 변화하고, 그에 따른 지배 방식의 차이가 나타난다.

대가야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 공동기획특별전
대가야 토기공방 고령본점과 창원분점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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