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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는 살아있다. 고대국가 대가야의 삶이 흐르는 역사의 현장


성장과 발전

대가야의 발전 - 대왕이 다스리는 나라

서기 300년대부터 가라국은 꾸준히 성장하여 대가야국으로 불렸다.
대가야는 주변의 철광산을 개발하여 농기구와 무기를 만들어 농업을 발전시키고 군대의 힘을 키웠다. 그리고 백제나 왜와 교류하며 발달된 문물을 주고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서기 400년대에 접어들면서 크게 발전하여, 479년에 하지왕(荷知王)은 고구려나 백제, 신라의 왕들처럼 중국에 사신을 파견하여 보국장군본국왕(輔國將軍本國王)이라는 이름을 받아 왔다. 그리고 대가야의 왕은 대왕(大王)으로 불리며 서기 400년대 이후 다른 가야 여러 나라들을 이끌었고, 서기 500년대에 들어서는 백제, 신라와 비슷한 단계까지 성장하였다.

대가야의 정치체제

전성기의 대가야는 합천ㆍ거창ㆍ함양ㆍ남원 등 넓은 지역에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은 넓은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정치제도의 발전이 백제나 신라와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대가야 토기에 ‘대왕(大王)’이라는 글씨와 ‘하부사리리(下部思利利)’란 글씨가 새겨진 것이 있는데, 수도 고령에 있는 대왕이 하부라는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가야가 멸망할 당시까지 대가야 권역 안의 가야 지역에 대해서는 개별 나라의 이름들이 쓰이고 있어, 완전히 하나로 통합된 정치체제를 갖추지는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국제교류

대가야는 백제ㆍ신라는 물론 중국ㆍ왜와도 문물을 교류하면서 발전하였다.
고아리벽화고분의 무덤구조와 연꽃무늬, 지산리 44호분에서 출토된 청동그릇과 등잔 및 입큰구멍단지 등은 백제와의 교류를 보여준다. 또 야광조개국자는 왜와, 지산리45호분의 고리칼은 신라와의 교류를 나타낸다. 한편 일본 열도 각지에는 대가야계통의 토기와 철기들이 출토되고 있어 대가야문화가 활발히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담당자
대가야박물관 054)950-7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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