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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는 살아있다. 고대국가 대가야의 삶이 흐르는 역사의 현장


지산리 44호분

순장

지산리44호분의 순장모습

지산리44호분은 중앙에 3기의 대형 돌방이 축조되어 있는데 가장 큰 돌방은 무덤 주인공이 묻힌 으뜸돌방(主石室)이고 다른 2기는 주인공의 내세생활(來世生活)을 위해 만든 창고와 같은 딸린돌방(副石室)로 추정된다. 으뜸돌방에는 주인공 외에 순장자가 있었고 딸린돌방에서도 각 1인의 순장자가 확인되었다. 돌방 주변에 배치된 32기의 순장돌덧널에서는 24명 가량의 인골이 확인되었으며 교란이나 부식에 의해 소멸된 인골을 포함하면 약 40인 이상이 순장되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대규모의 순장사례는 다른 삼국시대 고분에서는 아직 발견된 적이 없다. 특히 이 고분의 순장자는 다양한 직능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음이 주목된다. 즉 으뜸돌방 내에 주인공과 같이 묻힌 순장자는 생전에 그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시종으로 생각되며, 딸린돌방 내의 순장자는 공간의 성격으로 볼 때 창고지기와 같은 역할을 한 사람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주변의 소형 돌덧널에 순장된 사람들은 금으로 된 장신구를 착용한 사람, 고리자루칼과 같은 무기를 지닌 사람, 마구류를 지닌 사람, 장신구나 무기를 전혀 지니지 않은 시람 등 몇 부류로 구분된다. 이로 미루어 시종, 호위무사, 전사, 일반민 등 여러 직능의 사람들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산리44호분 발굴전경

기록으로 보는 순장

순장(殉葬)이란 어떤 사람이 죽었을 때 그를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이나 동물을 죽여서 함께 매장하는 장례행위를 말한다.
사람을 죽여서 다른 사람의 장례에 사용한다는 것은 강력한 권력을 소유한 통치자 집단의 지배력을 반영하는 것으로 특히 고대 세계에서 널리 성행한 풍습이다. 이는 사람이 죽은 뒤에도 삶을 계속한다고 믿었던 고대인들의 계세사상(繼世思想)에 따라 이승에서의 생활을 저승에서도 그대로 누리라는 의미에서 행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지(三國志) 위서동이전(魏書東夷傳) 부여조(夫餘條)에 “사람을 죽여 순장을 하니, 그 수가 많을 때에는 100명에 이르렀다(殺人殉葬 多者百數)”는 기록이 있어 일찍이 부여에 순장이 있었음을 전한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동천왕조(東川王條)에 “동천왕이 죽어(248년) 장사지내게 되었을 때 가까이 모시던 신하들이 스스로 따라 죽으려 하자 동천왕을 이어 왕위에 오른 중천왕이 ‘예가 아니다’라고 하여 이를 금하였다. 그러나 장례일에 이르러 묘에 와서 스스로 죽은 자가 많아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 이들의 시신을 덮어주었다”는 기록이 있어 고구려에 순장과 아주 유사한 순사(殉死)풍습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 지증마립간조(智證麻立干條)에 “3년(502년) 봄 삼월에 명을 내려 전왕이 죽었을 때 남녀 각 5인을 순장하던 것을 금했다(三年 春三月 下令禁殉葬 前國王薨 則殉以男女各五人至是禁焉)”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고대사회에서 순장이 널리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역사 기록이 거의 남지 않은 대가야에서는 고분 발굴을 통해 지배층에서 순장이 대대적으로 실시되었음이 밝혀졌는데, 이로써 가야에도 고대국가 공통의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담당자
대가야박물관 054)950-7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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