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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는 살아있다. 고대국가 대가야의 삶이 흐르는 역사의 현장


신라ㆍ통일신라시대

대가야의 도읍이었던 고령은 562년 신라에 병합되면서 대가야군(大加耶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가야가 만들었던 곳곳의 견고한 산성들은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견제하며 삼국을 통일하는데 긴요하게 사용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청주(菁州: 康州로 바뀜)에 속하여 적화현(赤火縣: 冶爐縣으로 바뀜)과 가시혜현(加尸兮縣: 新復縣으로 바뀜)을 거느렸고, 757년에는 다시 고령군(高靈郡)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후삼국시대에는 신라와 후백제의 국경이 맞닿아 있어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신라 및 통일신라시대의 유적과 유물

신라는 끝까지 저항한 대가야가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여러 가지로 대가야의 흔적을 없애려 했을 것이다. 왕족과 지배층은 먼 곳으로 옮겨 살게 하고, 궁궐과 관청 등 각종 시설들도 부숴 버리거나 다시 쓸 수 없도록 하였으며, 모든 것을 신라식으로 바꾸어 쓰게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령에 큰 절을 세워 대가야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기도 하면서 같은 신라 사람이 되어 주기를 원했던 것 같다. 이는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지산리당간지주와 석탑ㆍ불상 등에서 알 수 있다.
‘물산사’ 새김 기와조각

‘물산사’ 새김 기와조각

고령 지산리의 모산골에서 나온 물산사(勿山寺)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다.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지산리당간지주가 있던 모산골의 절 이름이 ‘물산사’였으며, 현재의 ‘지산리’라는 마을 이름이 물산(勿山)→물(못)산→지산(池山)으로 변해왔음을 알 수 있다.
담당자
대가야박물관 054)950-7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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