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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는 살아있다. 고대국가 대가야의 삶이 흐르는 역사의 현장


고려시대

고령은 고려 초인 940년에는 경산부(京山府)에 속하게 되었고, 그때까지 거느리던 야로현과 신복현이 떨어져나가 그 세력이 약해졌다. 이어 고려 무인정권 시기인 1175년에는 감무(監務)라는 중앙에서 파견되는 관리가 오면서 다시 지위가 높아졌다. 한편, 고령은 낙동강을 통해 바다와 이어져 왜구가 드나들었는데, 고려 말에는 박위(朴葳) 장군이 고령에서 왜구를 격멸하기도 했다.

고려시대의 유적과 유물

1274년 몽고 세조 쿠빌라이 - “반룡사 손대지마!”

반룡사 다층석탑 통일신라시대를 지나 고려시대에도 고령지역에서는 계속 불교가 융성하여 많은 절이 있었다. 특히, 반룡사가 유명한데 고려 무인정권기인 1200년대 초에는 전국의 유명한 승려들의 모여 신앙결사단체를 만들기도 했고, 1274년(충열왕 즉위년)에는 중국 원나라 세조가 절을 보호하라는 글을 내걸기도 하였다. 현재, 반룡사에는 고려초에 만든 다층석탑과 함께 조선시대에 만든 범종과 부도 등이 전해온다. 한편 개진면 개포리에는 서기 985년(성종 4)에 만든 관음보살상이 있는데, 조선초에는 이곳에 있는 포구를 통해 남해안과 낙동강을 거슬러 옮겨온 팔만대장경을 해인사로 옮긴 곳으로 유명하다.

반룡사 다층석탑

이 석탑은 검은색의 점판암으로 된 납작한 옥개석(지붕돌)만 층층이 포개어 놓은 모양이다. 모두 12층의 옥개석과 그 아래에 연꽃이 돋을새김 된 기단 덮개돌이 2매 있다. 탑을 받치는 기단은 화강석을 사용했다.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개포리 석조관음보살좌상

개포리 석조관음보살좌상

이 보살상은 높이가 1.5m 정도 되며 머리에는 토속화된 모습의 보관을 쓰고, 손에는 연꽃을 들고 연화대좌에 앉아 있다. 특히 광배의 뒷면에는 30여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고려 초인 985년에(성종4)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팔만대장경을 해인사로 옮길 때 이용된 개경포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담당자
대가야박물관 054)950-7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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